양적완화(QE)에 대한 오해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가 어떤 정책인지는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미 연준(FED)의 양적완화를 달러를 발행해 돈을 뿌리는 것이라고 알고 계시더군요. 실제로 많은 기사에서도 양적완화를 설명할 때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동원된다고 언급하고 있고, 또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그림을 넣어 이를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설명은 잘못되었습니다 경제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커뮤니티에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양적완화를 설명하는 분도 잘못 전달했던 것이죠.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적완화를 시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확한 설명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시행할 때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 ‘양적완화(QE)에 대한 오해’ 글 구성>
·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 개념 잡기
· 양적완화 진행과정
· 양적완화의 종료 이후의 정책
· 양적완화에 대한 또 다른 오해
· 정리하는 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 개념 잡기
양적완화는 본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췄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때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입니다. 보통 유동성은 ‘돈’을 의미하기에 많은 분들이 중앙은행이 직접 시중에 뿌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지만 중앙은행이 돈을 들고 다니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나눠주지는 않습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내는 발권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돈을 찍어 나눠주는 것은 아닙니다. 화폐를 찍으려면 담보가 있어야 합니다. 담보 없이 화폐가 발행되면 급격하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담보가 되는 상품이 바로 채권입니다. 중앙은행은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공사채, 모기지(부동산 담보) 채권 등을 매입하고, 이들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그러면 이들 금융회사들이 대출 등을 일으켜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되는 것이죠.
동시에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채권을 매입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고, 채권 금리는 하락하게 됩니다. 즉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채권시장 전체의 금리가 하락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에 영향을 받은 시중금리도 하락하면서 자금융통이 수월해집니다. 덕분에 경제주체(가계, 기업, 정부)들은 이자와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죠.
양적완화의 진행과정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시중은행들은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합니다. 자금경색이 시작되면 채무자들의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수록 은행의 부도 위험은 급격하게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은행에는 돈이 들어옵니다. 은행들은 이 돈을 일단 보관합니다. 혹시라도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이라도 발생하면 큰 위기에 처하게 되니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는 겁니다. 하지만 은행입장에선 돈을 계속 놀게 놔둘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적은 수익이라도 낼 수 있도록 국채나 국공채를 매입하는 것이죠. 하지만 만기가 아주 짧은 7일짜리 초단기 국채 등을 중심으로 매입합니다. 그래야 언제든지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고, 손익 변화에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정부입장에선 이렇게 시중은행에 남아도는 돈과 은행의 초단기 국채매입을 그대로 놔두고 볼 수 없습니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라도 잉여자금과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돈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남아도는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지급준비금)하도록 강제합니다.. 그런 뒤 이 자금(지급준비금)으로 장기 국채나 모기지 장기 채권을 등을 매입하는 것이죠.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지급준비금으로 채권을 매입해 시중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공급하게 되는 것이고, 시중 은행입장에서는 중앙은행으로부터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를 받으면서 여유자금은 대출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양적완화의 기본 프로세스입니다.
* 지급준비금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본문 하단의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중앙은행이 시중 금융기관으로부터 장기 채권을 매입하면 채권가격이 상승하면서 장기 채권 금리가 하락합니다. 장기채권 금리 하락은 단기 채권 금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시중 금융기관에는 유동성이 공급됩니다. 금융회사들은 유동성 공급과 금리인하 덕분에 여유자금을 주식시장이나 대출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만약 이 유동성이 다시 중앙은행으로 추가로 예치(초과지준)되더라도 중앙은행은 이를 다시 장기 채권을 매입하는데 활용합니다. 중앙은행은 자신들이 원하는 효과(경기 활성화)가 나올 때까지 이 행동이 반복합니다. 참고로 미 연준(FED)은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이후로 2009년부터 4차에 걸쳐 장기 채권을 반복 매입했습니다. 그 규모는 약 3조 7천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현재 환율 1370원 기준으로 약 5094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양적완화의 종료 이후의 정책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가 살아나고, 이후 경기과열까지 나타나면 중앙은행은 긴축정책으로 선회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테이퍼링(tapering)입니다. 테이퍼링은 정부가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중에 공급했던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법입니다.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유동성을 축소하는 것이죠. 출구 전략의 일종입니다.
정부는 테이퍼링을 선언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시장에 양적긴축을 시행할 것을 내비칩니다. ‘양적완화’가 장기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이라면, 양적긴축(QT, Quantitative Tightening)은 장기 채권을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정책입니다. 그러면서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매각하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채권 금리는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시중금리도 상승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양적긴축과 금리인상이 급격히 진행되는 경우엔, 시장이 발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달러 빚이 많은 신흥국에서 주로 발생되는데, 이를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이라고 합니다. 만약 신흥국 위기가 미국까지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미 연준(FED)은 긴축 속도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양적완화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양적완화는 돈을 찍어내 여기저기에 뿌리는 정책이 압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양적완화가 자산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실 양적완화는 자국 내에서 돈이 돌도록 유도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돌지 않는 곳에서 임의적으로 돈을 가져와 돈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돈을 뿌리면 화폐의 유통속도가 늘어납니다. 화폐유동속도가 늘어난다는 것은 경제주체들 간에 더 많은 거래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거래가 늘어난다는 것은 돈을 빌리는 일이 쉬워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이는 자산 격치 상승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양적완화가 자산 가치를 높이지 않는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죠. 따라서 양적완화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긴 하나 경제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동시에 자산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는 글
오늘은 ‘양적완화(QE)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으로 많은 분들이 양적완화를 돈을 뿌리는 정책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으로 설명드렸습니다. 동시에 양적완화는 경제를 살리면서 그 부작용으로 자산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고 말씀드렸죠.
앞으로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양적완화는 또다시 등장할 겁니다. 그렇기에 제 글을 찾아주시는 분들만이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양적완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최소한 국제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큰 흐름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큰 흐름을 파악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렇게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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