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리디노미네이션
잊을만하면 경제기사에 한 번씩 등장하는 용어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데요. 그 이유는 실행했을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했던 국가들 중에는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리디노미네이션이 무엇이고, 어떤 취약점이 있으며 국내외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란?
리디노미네이션이란 국가가 화폐 액면가를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일종의 화폐개혁입니다. 예를 들어 10,000원을 1원, 10원, 100원 등으로 바꾸는 것이죠. 단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즉 10,000원짜리 물건이 있는데, 리디노미네이션 실행 후 변경된 1원으로도 동일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혹 카페 같은 곳을 가보면, 1,000원 이하의 단위를 생략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래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3,500원 → 3,000원’과 같이 표시하면서 500원을 빼주는 것이죠. 이 카페 역시 낮은 숫자의 금액으로 같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적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이유
물가가 상승할수록 화폐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10년 전 짜장면 값은 약 4,000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2024년 짜장면 평균 가격은 7,000원입니다. 물가가 오른 것이죠. 이 말은 10년 전에는 4,000원에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지만, 2024년 현재에는 동일한 돈으로 짜장면을 사 먹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돈의 크기가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돈의 크기가 늘어났다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화폐를 발행해 사용하면서 경제가 발전하는 국가들이 모두 겪는 현상입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이처럼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돈의 자릿수가 늘어남으로써 발생하는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숫자가 커질수록 계산이 느려질 뿐 아니라 숫자를 확인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가의 한 해 수입과 지출을 계산할 때는 조 단위를 넘어 경 단위로 숫자가 커지는 경우가 많아 숫자를 확인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돈의 자릿수를 줄이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것입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취약점
그동안 많은 국가들이 계산과 지급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이점만큼이나 취약점 역시 큰데요.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8,500원짜리 설렁탕이 있는데, 세 자릿수를 줄이는 리미네이션을 단행하면 이 설렁탕 값은 8원이 아닌 9원으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최소단위를 1원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가격을 8원으로 정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단지 음식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950,000,000원짜리 주택을 구입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세 자릿수를 줄이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고 해볼게요. 그럼 950,000원이어야 할 집이 1,000,000원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숫자가 줄어든 만큼 가치가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죠.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물가 전반이 상승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물가가 오르면 화폐 가치는 하락합니다. 만약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해 물가가 상승하면 원화의 가치는 하락하게 되고, 이는 원화 약세, 즉 환율이 치솟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한창 이어질 때 기관과 부자들을 중심으로 달러를 매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달러의 가치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리디노미네이션이 현실화되면 물가 전반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원화는 약세가 되고 달러는 강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럼 당연히 여기서 환차익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들의 목적은 수익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리디노미네이션이 시행되면 전반적인 금융 거래시스템 수정, 화폐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노출 가능성, 신권발행 비용발생 등의 문제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시행에 앞서 비용대비 효과를 꼼꼼하게 잘 따져봐야 하겠죠.
리디노미네이션 국내외 사례
대한민국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전례가 있습니다. 그것도 세 차례나 있었죠. 1950년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1953년에는 전쟁 이후에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100원을 1 환으로, 1962년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10 환을 1원으로 변경한 바 있습니다.
국외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한 국가로는 독일, 터키, 브라질, 아제르바이잔, 모잠비크,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가나, 북한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의 경우를 설명드리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2009년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했습니다. 모든 화폐에서 0을 2개나 떼어 새로운 화폐를 발행했죠, 보통 정부가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하면 구화폐를 신화폐로 바꿔주는데 일정 기간을 설정합니다. 사람들이 충분히 시간을 갖고 구화폐를 신화폐로 바꿔가라는 의도인 것이죠. 하지만 북한은 단 24시간 동안에만 구화폐를 신화폐로 바꿔준다고 공표했고, 교환할 수 있는 구화폐의 액수도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기존화폐를 대량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눈앞에서 자신의 재산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이유는 북한 지도층이 암시장에 있던 자금을 강제회수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시행된 리디노미네이션은 불과 몇 달 만에 물가폭등을 일으켰고, 상품공급 위축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기존에 2300원이었던 쌀 1kg 가격은 4만 원으로 튀어 올랐고 달걀 한 알은 7,0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2010년 북한의 명목 인플레이션은 임금인상을 감안하면 약 2500%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 실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당시 북한 지도자였던 김정일은 원활한 후계구도구축을 위해 화폐개혁을 총괄했던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에게 책임을 묻고 그를 공개 총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현재진행 중인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개혁)은 지금껏 말씀드린 것처럼 명확한 장점이 있는 반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언젠가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화폐단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하기에는 적절한 타이밍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가가 조금씩 잡혀가고 있는 가운데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하면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미리부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정부 역시 리디노미네이션의 여러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있기에 해외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사회적 합의를 거친 뒤 점진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는 글
오늘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리디노미네이션 ’라는 제목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의 뜻, 도입배경, 취약점, 국내외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미리 검토하고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정부 주도로 충분히 준비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도입 시기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리디노미네이션 단행 시기는 대한민국이 CBDC(중앙은행디지털화폐)를 적용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네요.
그럼 오늘은 이렇게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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