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삼위일체 알아보기
국제금융이론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는 항목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불가능한 삼위일체’라는 이론이 있는데요. ‘불가능한 삼위일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가 주장한 이론으로 전 세계가 공통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자유로운 자본이동’, ‘안정적인 환율’, ‘독립적인 통화정책’ 모두를 택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외환당국은 이 세 가지를 왜 모두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요? 오늘은 불가능한 삼위일체를 알아보면서 이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왜 함께 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
그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자유로운 자본이동, 안정적인 환율,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동시에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함께 하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요소가 하나가(삼위일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삼위일체’ 혹은 ‘삼위일체 불가론’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죠.
또한 ‘불가능한 삼위일체’를 ‘트릴레마(trilemma)’라고도 표현하는데, 트릴레마는 한 가지 정책 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다른 두 가지 정책 목표를 이루기 어려운 상황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어떻게 불리든 이 세 가지 요소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을 취하고 있을까요?
1997년 IMF사태부터 택한 변동환율제
대한민국은 1997년 IMF 사태 이후부터 변동환율제를 채택해왔습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변동환율제를 택한 국가들은 ‘자유로운 자본이동’과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선택해 왔죠.. 반면 고정환율제나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를 선택한 국가들은 이와 다른 요소를 선택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환율정책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요소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한국경제를 소규모 개방경제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 표현에는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죠. 또한 대한민국에는 한국은행이라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취해왔던 것이죠. 그럼 세 가지 요소 중 남은 하나인 ‘안정적인 환율’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 외환당국은 이것을 포기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가능한 삼위일체가 나타난 이유
‘자유로운 자본이동’, ‘안정적인 환율’,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한국이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하고 국내 수출기업들의 활성화를 위해 고정환율제를 택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내수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리인하를 시행합니다. 그럼 한국은 표면상으로 자유로운 자본이동, 안정적인 환율(고정환율제),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모두 택했네요? 그런데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주식을 비롯해 모든 자산시장이 활황입니다. 그래서 미 연준(Fed)이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합니다. 한국은 금리를 인하하고, 미국은 금리를 인상한 거네요. 그럼 투자자들은 한국에 투자했던 자산을 팔아 원화를 받고, 받은 원화를 다시 달러로 바꿔 자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한국이 금리를 올리면 투자자산의 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는 원화를 달러로 바꿔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외환시장에서는 달러가 부족하고 원화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럼 결국 환율이 치솟게 됩니다.
그런데 앞서 한국은 고정환율제를 택했다고 말씀드렸죠. 1달러를 1,000원으로 고정시켜 놨는데,, 환율이 치솟으면 환율정책이 위협받습니다. 그럼 외환당국은 외환보유고를 이용해서라도 달러를 풀어 환율을 1000원으로 다시 맞추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에는 한계가 있죠.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꾸기 때문에 외환보유고에 비축되어 있던 달러가 쉽게 바닥날 수 있습니다. 그럼 달러가 부족해지면서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하면서 고정환율제를 택한 나라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펼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하고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환율이 변하는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있죠.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있다는 말은 환율변동을 허용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안정적인 환율을 포기한 것이죠. 물론 위기 시에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환율 움직임을 일정 부분 컨트롤하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일은 위급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먼저 적극적으로 환율개입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홍콩은 미 달러 페그제라는 환율정책을 선택했습니다. 달러페그제는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이 움직이도록 고정한 환율정책입니다. 그렇다면 위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안정적인 환율’을 택한 것이네요. 또한 홍콩은 또한 아시아 금융허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금융허브라는 말에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가 포함되어 있죠. 그렇다면 홍콩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한 것일까요? 네 맞습니다. 홍콩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함께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함께 기준금리를 인하합니다. 하지만 자국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함께 올려야하기 때문에 내수경제가 크게 위축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국의 경제상황이 좋은 상황이라도 금리를 내리면 함께 내려야하기 때문에 시장이 과열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떤 환율정책이든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죠.
정리하는 글
오늘은 ‘불가능한 삼위일체 알아보기’라는 제목으로 국가가 택한 환율정책에 따라 자유로운 자본이동, 안정적인 환율, 독립적인 통화정책 중 하나는 무조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한 국가가 어떤 환율정책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환율정책을 선택하느냐는 해당 국가의 경제체력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기에 경제체력이 약한 신흥국들이 변동환율제를 덥석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환율이 급등하면 급격한 자본유출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죠. 자본유출이 일어나면 자산 가격이 붕괴되고, 심각한 경우에는 경제가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국가든지 자국의 경제체력을 고려한 환율정책이 필요한 것이죠.
그럼 오늘은 이렇게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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